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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삼어(三語)
이름: 소요거사


등록일: 2008-07-22 10:08
조회수: 1152 / 추천수: 157




진(晋)대의 완수라는 사람은 말을 적당히 버무리는 특기가 있었다.
태위직에 있는 왕연이라는 자가 어느날 그에게 물었다.
"노장(老莊)의 철학과 유가(儒家)사상의 차이점이 무엇인가?"
질문으로 보아 장황한 대답이 나올법 한 대목이다. 그러나 완수는 단 세글자로 답을 끝낸다.
"같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將無同)"
같다는 것인지 다르다는 것인지 말뜻이 분명치 않지만 왕연은 이에 크게 만족하여 자신의
막료에 임명한다. 아마도 센스가 기막히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당시의 사람들은 그를 '삼어(三語)로 출세한 관리'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순간적으로 말을 뒤섞어 윗사람의 뜻을 거스르지 않는 일은 아무나 할수 있는게 아니다.
그렇다고 적당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면 무능으로 찍히게 되기 때문이다.
이럴때 말을 대강 흐려 위 아래 사람의 뜻을 적절히 아우르는 요령은 식자들의 필요한 기교
로 통했다. 삼어는 그래서 생긴 고사이다.

금나라 군대를 물리친 명장 악비를 시기한 재상 진회는 여러모로 모함하여 급기야는 그를
옥에 가둔다. 분개한 다른 장수 한세충이 진회를 찾아가 따져 물었다.
"무슨 죄가 있는가?"
진회의 대답도 세 글자였다.
"아마 있다고 하지  않을수 없을걸(莫須有)"
상황을 대충 얼버무려 위기를 넘겼다는 의미에서 이 대답도 역시 사람들의 입에 잘 오르내
리는 고사의 한 토막이다.

.

삼어는 세의 유 불리를 따져 상황을 두리뭉실하게 넘기는 처세술을 말한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듣는사람으로 하여금 헷갈리게 만듬으로서 문제의 초점을 흐려
서 현실을 모면하는 얕은 술수라고도 할수 있다.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은 회피한채 아래 위 틈바구니에서 자신의 자리를 교묘하게 지키려는
방편의 일환인 것이다.

그러나 이 삼어는 때로는 분쟁을 조정하고 시비 당해자 양편 모두에게 만족을 주는 현명한
화술의 방법으로 통하기도 했다.
다 알고 있는 세종때 정승 황희의 일화가 바로 그것이다.
어느날 두 계집종이 서로 자신의 옳음을 주장하며 주인인 황희에게 시시비비를 가려달라고
청한다. 첫번째 계집종의 장황한 설명을 듣고 난 후 "네 말이 과연 옳다"라고 판결을 내리자
이번에는 두번째 계집종이 나서서 또한 자신의 변명을 늘어놓았는데 판결은 "네 말도 역시
옳다" 였다.
옆에서 이 판결을 보고 있던 부인이 "한쪽이 옳으면 옳다 그르면 그르다고 해야지 둘다
옳다고 하면 어찌합니까?" 하니 황희의 대답이 "역시 부인말도 옳소" 였다.
그렇게 해서 세사람 모두 허허 웃고 말았다는 이 이야기는 삼어 화술이 때로는 현명하게도
쓰임을 빗대어 말한 것이다.

.

학문의 진리나 세상살이의 정도에 대헤서는 절대로 외면하지 말고 엄정하고 정당하게 잘잘
못을 가리는 것이 지식인의 일이지 잘못하고 바르지 못한 일임을 알면서도 눈을 감고 또한
애매모호한 말로 얼버무리는 것은 올바른 비판의식의 결여라 할수 있다.
그로므로 삼어는 사물의 옳고 그름을 흐리게 하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그 숨은 의미를  명
확하게 판단할수 없게 한다는 맥락에서 의식있는 사람들,특히 지도자 된 사람의 입장에서는
절대로 가벼히 여겨서는 안될 일이다.
「도산사숙록(陶山私淑錄)」이라는 다산의 글에 <퇴계처럼 점잖고 중후했던 학자도 '목은
(牧隱) 포은(圃隱)등 당대의 존경받는 석학들에게 대해서도 어긋나거나 부족한 부분에 대해
서는 꺼리끼지 않고 논 한바가 있다>고 했다.
참으로 대공지정(大公至正)의 마음으로 곡학아세(曲學阿世)하지 않는 공언(公言)이라면
이를 듣는 쪽에서도 공변(公辯)으로 삼을 것이니 이러함으로 삼어처럼 두리뭉실한 처세는
결코 식자의 바른 가치관이 아닐것이다.
"네네 좋습니다."
"편할대로 하시지요"
"그야 뭐 그럴수도 있겠지요"
좀처럼 자기 색깔을 들어내지 않는 이런 류의 삼어식 표현은 타인에게도 그렇지만 자기에
게도 솔직한 것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

미국산 쇠고기협정 파동으로 촛불시위가 벌써 두달을 넘어섰다.
처음에는 단순히 먹거리 문제라는 순수한 이슈로 시작한 것이였으나 어느 순간 정치적인  
양상으로 두리뭉실 변질되어 버렸다. 촛불시위를 보는 국민들의 시각도 각각이여서 그 옳
고 그름을 쉽사리 단정지을수 없을만큼 혼란스러운것 역시 사실이다.
시위가 한창 격렬 할 무렵 일본에서 막 <초한지(楚漢誌)>의 완역을 끝내고 귀국한 작가
'이문열'씨가 이런 시위현상에 대하여「반촛불 의병 발언 」을 쏟아내 일반인과 누리꾼들
을 찬반격론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모두 미친 줄 알았는데 용기있는 분이 계시군요 (중략) 진정 용기 있고 지혜있는 지도자는
이문열 작가 뿐입니다" (누리꾼 'gogc'의 댓글:동아닷컴)
그러나 반대 의견 역시 만만치 않았다.
여론에 귀 기울리지 않고 독단적으로 정책을 이끌고 가는 새 정부에 항의하여 두달 가까이
정당하게 촛불시위를 벌리고 있는 시민들의 상황을 '내란'에 비유하고 그에 맞서 의병을 일
으켜야 한다는 발언은 일부 국민으로 부터 등을 돌리게 했다.
여기서 이문열씨의 발언이 옳고 그름을 가리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으며 그럴 필요 역시 느
끼지 않는다. 다만, 자신이 진리라고 믿었을때 명료한 판단을 내리고 그것을 스스럼없이 주
장하는 소신있는 '말' 의 구사에 대한 용기와 책임을 이르고져 할 뿐이다.
문득, 같은 시기에 대중적인 지지를 가장 많이 받고 있다는 한 여성 정치지도자에게 이에
대한 의견을 물었을때 나온 대답인즉 "국민들도 나무랄 수 없고 정부 또한 나무랄 수 없지요"
정치적인 수사 인지는 몰라도 양쪽 다 옳을수도 있고 그를수도 있다는 이 양비론을 들는 순
간 필자는 왜 고사에 나오는 삼어를 떠 올렸을까?

.

논어에 '사불급설(駟不及舌)이라고 했다.
네마리 말이 끄는 빠른 마차라도 혀의 빠름에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말은 한번 하면 거둘 수 없는 것이니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그것이 삼어이던 그렇지 않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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