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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순상재에서 보내는 이야기 63 - 신(神)이 된 사람들
이름: 홍순석


등록일: 2007-10-04 14:42
조회수: 1748



강릉시에서는 '1공무원 1전문지식 갖기'운동을 전개하면서 필자는 '구비문화'편을
기고하게 되어 작성된 원고를 제출하기 전에 동문제위를 위하여 먼저 상제한다.

63. 신(神)이 된 사람들

향토사를 공부하기 위하여 구전되는 전설이나 설화 또는 피조물의 유래를 채록하다 보면 자연물이나 사람과 연관된 구비문화자료가 많이 나타난다. 옛날사람들 중에는 죽어서 이름을 남겼거나 후세에 의하여 신(神)으로 추앙받는 사례가 많은데, 금회에서는 죽어서 신(神)이 되어 현세에서도 제례를 통해 전해지는 사람 즉, 성황신(城隍堂의 主神또는 配享神)에 대해서 개괄적으로 알아본다

먼저, 역사에 기록된 인물중 신이 된 사례로 대관령정상 서편 산록에 위치한 산신각과 성황당은 강릉단오제의 원천이 되는 神들을 모시고 있다. 고려건국에 획기적인 역할을 했던 김순식(후일 왕씨성을 하사받는다)은 견훤의 지지계층으로 전쟁에 출전하기전 꿈에 김유신 장군이 현몽하여 전쟁에 승리했고 그후 왕건에 복속하여 고려호족으로 당대의 명문가를 이룬다. 후일 대관령 산신각에는 김유신 장군을 산신으로 섬기게 되고, 우측 성황당에는 신라불교 구산중 사굴산파의 시조인 범일국사를 성황신으로 모시고 있다.

다음은 이름없는 어느 바닷가 처녀가 신이 되어 후세에서 성황신이 된 사례다. 옛날 연곡현(당시에는 주문진의 지명이 없이 연곡현에 포함된 시기이다) 바닷가에 ‘진’이라는 처녀가 살고 있었는데 고을의 원님(員)이 바닷가를 순시하던 중 미모의 처녀를 보고 혹하여 수청을 명하나 거절하여 옥에 가두고 아비와 오라비를 협박해도 굴하지 않고 옥중에서 자결한다. 후일 연곡바다에서는 흉어와 풍랑이 계속되자 마을 사람들은 쌀을 모아 정성을 기울려 제사를 지내니 풍랑이 잦아들고 풍어가 계속되자 후일 성황당을 짖고 ‘진’낭자를 성황신으로 모셨으며 현재의 위치는 주문진항 북쪽 산마루에 있는 주문진 성황당이다.
안인의 성황당은 마을처녀 ‘해랑’을 모시는 성황당이다. 한마을에서 사랑하던 청년이 바다로 나가 돌아오지 않자 사랑을 이룰 수 없는 자신을 한탄하며 스스로 투신하여 자결한 후 성황신이 되었는데 마을에서는 이 처녀의 정절을 높이사서 신으로 모셨으며 여자인 까닭으로 나무로 남근(男根)모형을 만들어 성황당에 걸어 놓는 풍습이 생겼고, 삼척 신남리의 해신당의 여신도 해랑당과 유사하며 삼척에서는 여성황의 전설을 관광상품으로 만들고 있다.

사랑하는 남여가 같이 성황신이 된 연곡 영진의 전설로 옛날 영진바닷가에 서로 사랑하는 총각처녀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청년이 그물치러 나가서 풍랑을 만나 평소의 선행으로 용궁으로 가게되고 사실을 모르는 처녀는 애타는 마음으로 청년의 귀환을 기다리다 지쳐 서서히 몸이 굳어 바위가 되었고(매바위), 뭍의 처녀를 흠모하는 청년은 용궁생활도 거부하고 거북을 타고 뭍에 오르다 주변사람이 처녀가 당신을 기다리다 바위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또한 바위(거북바위)가 되었다. 후일사람들은 이 두사람의 사랑을 기려 할아버지성황당엔 청년을 할머니성황당엔 처녀를 신으로 모시고 오늘까지 모셨는데 최근 개발로 할머니성황당은 없어 졌으나 필자가 연곡면장 재직시 떨어져 있던 거북바위를 매바위옆으로 옮겨 성황제를 지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필자의 고향인 왕산에는 어느 이름 모를 스님이 성황신으로 모셔져 소개하고자 한다.
왕산리 버스종점에서 우측 100m밑에 위치한 성황당의 주신은 이름모를 스님(僧)이라고 전해진다. 관내 모든 성황당의 제례가 통상 자시(子時)에 이루어 지나 이곳은 매년 정월 초정일(初丁日)과 동짓달 초정일로 제례를 봉행하는 시간이 오후 4시경에 지내는 특징이 있다.
구전되는 유래로는 옛날 지금의 성황당 자리가 닭목령을 넘는 길목인데 이곳에서 어떤 스님이 배가고파 굶어 죽었는데(餓死,饑死) 마을 사람들은 스님이 불쌍하여 이곳에서 제사를 지냈는데 그후로부터 마을이 윤택해 졌다고 한다. 그런 연유에서 이곳은 고기(肉)는 물론 생선포(生鮮鮑)도 쓰지 않고 삼실과(三實菓)와 백설기, 그리고 새웅메밥이 전부이며 제례시간도 한겨울 저녁을 굶으면 밤을 보내기 어려운 공포의 시간대인 오후 4시경에 지냄으로 스님의 배고픔을 배려한 제례로 보인다. 제례순서도 잔을 올리고 독경(讀經)을 하는데 ‘소천수’로 부정을 물리는 경과 ‘불설고왕경’으로 승려의 극락왕생을 비는 경을 암송하고 마을사람 개개인의 소지를 올리는 순서로 진행되는데 헌폐, 고축, 소지순으로 올리는 일반 성황제와는 현격하게 다르게 제례를 올린다.
또 스님을 위한 제례는 마을 사람들이 순수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배고파 죽은 혼령을 달래주었기에 마을이 잘 살게 되었다는 구전으로 아직까지 이곳사람들은 이웃과 함께 다정다감하게 살아가고 있으며 마을 화합이 잘 되는 부락이다.

이외에 국사여성황의 경우 정씨 집안의 처녀가 호랑이에게 물려가 죽어 혼령을 달래기 위해 성황신으로 모시고 강릉단오제에서 주신으로 섬김을 받으며, 주문진 소돌의 해당화성황당의 경우 해당화꽃나무가 성황신이 되기도 한다. 통상 해안가 마을에서는 바다와 가까운 쪽의 성황이 여성황신이 안거하고 마을의 수구에 있는 성황신은 남자가 주신인 남성황신을 모시는 것이 보통이다.

학문적으로는 ‘지방에 따라 성황당(城隍堂)·할미당(전라남도)·천왕당(경상북도)·국사당(國師堂;평안도) 등으로 불린다. 중국의 성황(城隍)에서 유래하였다 하나 분명치 않으며 한국 고유의 것으로 보인다. 서낭신은 토지와 마을을 수호하는 신으로서 최근까지 가장 널리 제사지내던 신이다. 서낭당은 서낭신의 봉안처인 동시에 거소로, 보통 신수(神樹)에 잡석을 쌓은 돌무더기거나 신수에 당집이 복합되어 있는 형태로 고갯마루, 한길 옆, 부락·사찰 입구 등 전국 도처에서 발견되는 민간의 보편화된 신당(神堂)이다. 서낭신앙에는 내세관이나 인간의 정신세계에 대한 이상이 없고 다만 현실생활의 문제로써 액·질병·재해·호환(虎患) 등을 막아주는 부락수호의 관습에서 비롯된다’ 라고 정리하고 있다.
    
소요거사
좋은 자료 잘 읽었습니다.
지방마다 구전되어오는 많은 설화들은 기실 그시대 민초들의 삶과 인연되어 있지요.
그것들은 神仰이고 哲學이였습니다.
기술하여 주신 한두가지는 들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제 佳筆로 정리된 것을 보니 새삼
친근함이 깃듭니다.
계속 좋은 자료 발굴하여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2007-10-17
11:3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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